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건축 (문단 편집) ==== 유교의 확산 ====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사회 전반에 자리잡았다. 유교 건축은 사치를 지양하므로 굉장히 '''엄숙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건축은 사치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재력이 되면야 사치스러운 양식을 했지만 유교 건축에서 만큼은 극도록 절제된 위엄을 중시했다. 유교 건축의 대표적인 예시는 [[종묘]]와 [[서원]]이다. 이들 건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 건축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점하는 종묘나 서원은 용도 자체가 유교적 건축물의 대표격으로 장식과 [[단청]]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들어 의도된 엄숙함을 보인다. 이를 가칠단청이라고 하며, 단청 중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단색의 특정 안료만 칠해놓은 단청이다. 보통 가칠단청은 다른 단청을 칠하기 전 밑바탕으로 칠하는 용도로 많이 쓰는 단청이라 종묘를 비롯한 극소수 건물 외에는 찾기 힘들다.[[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YYWb&articleno=551&categoryId=3®dt=20111110181327#ajax_history_home|종묘 단청]] 궁궐은 역으로 종묘보다 화려한 모로단청을 칠했고, 여러 장식을 썼다. 궁궐이 아닌 [[불교]] 건축은 더 화려해서 [[해인사]] 대적광전 같은 [[불교]] 건축은 유교적 기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복잡한 문양과 화려한 채색을 강조하는 '금단청'을 칠했다. 조선시대에는 건물의 '''격이 높을수록''' 역으로 절제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의 자금성은 당나라 시기의 대명궁에 비하면 크기는 작으나, 건물 자체를 화려하게 짓기보다는 석축과 건물의 폭[* 건물은 높이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부터는 더 높아지는 것보다 좌우 폭이 넓어질수록 위압감이 강하다. 높이는 63빌딩이 더 높지만, 건물의 위압감 자체는 피라미드가 훨씬 강한 것과 같은 맥락.]이 더 넓어지는 방향성을 취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절제했다기보다는, 화려함보다는 위압감과 권위를 높이는 쪽으로 발달했다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